[TLDR] AI 와 대화를 나누다 자살한 소년과 온라인 게임에서 구원을 찾았던 소년
지난 2월 28일, AI 챗봇 플랫폼 character.ai 에 올라와 있는 대너리스 타가리엔 -<왕좌의 게임> 의 등장 인물- 챗봇과 몇 개월 째 친밀한 대화를 이어 가던 올랜도 출신의 14세 소년 스웰 새쳐 3세(Sewell Setzer III, 이하 스웰)는 “나를 보러 집으로 빨리 와” 라고 말하는 대너리스 챗봇과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집에 있던 권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후 발견된 그의 일기장에는 ‘웨스테로스(<왕좌의 게임> 의 배경이 되는 가상 대륙)’ 가 자신의 현실이며, 지금의 현실로부터 떨어지고 싶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2014년, 25세의 나이로 근육이 감소되는 희귀병 때문에 사망한 매츠 스틴은 사망하기 전까지 8년 이상 몰두했던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내에서 자신의 캐릭터 ‘이벨린(Ibelin)’ 을 통해 악몽 같은 현실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 속 길드 활동에서 그는 유능한 탐정이자, 상담가였습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길드원들과 세월에서 그는 현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사랑, 우정, 갈등 등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 길드원들이 참여하여 그를 추모하기도 했습니다.
마츠의 삶은 벤자민 리 감독의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이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유통되었으며, 2024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수상 하기도 했습니다.
두 소년 모두 현실에 없는 디지털 세상의 누군가와 소통하며 구원을 찾았습니다. 2014년과 2024년, 10년 사이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소통의 반대편에 사람이 앉아있느냐, 아니면 기계(AI) 가 있느냐는 점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사이에, 인간에게 디지털 세상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훨씬 더 직접적으로, 그리고 소외되는(Alienated)쪽으로 변했습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들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비교적 간접적 이었습니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올린 게시물, 좋아요, 댓글을 ‘통해서’ 우리는 영향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엔 거의 대부분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앉아 있었습니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 다음엔 숏폼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소셜 미디어의 시대 보다 훨씬 더 적은-그러나 유명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훨씬 더 많은 게시물들을 끊임 없이 소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콘텐츠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직접 말을 거는 디지털 세상’ 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콘텐츠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 받는 것 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방법으로 디지털 세상은 우리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글에서 AI 챗봇을 검색하면 가장 상단에 걸리는 광고가 주장하는 것이 ‘검열 없는’ 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견고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한 마디의 악플만 달아도 밤 새 심장이 뛰어 잠을 못 잘 것입니다. 문자로 전달되는 말의 힘은 그만큼 강력합니다. 사람들은 잠이라도 자지만, AI 는 24/7 언제든 우리에게 말을 걸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굳이 영화 <Her> 를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다’ 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또 무서운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오는 12월에, OpenAI 이 새로운 플래그십 모델 ‘Orion’ 을 런칭한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Orion 은 GPT-4 보다 100배 이상 강력하며, 지금껏 나온 어떤 모델들보다 일반 인공 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에 가깝다는 말들이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이 현실을 지배하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들이 디지털 회사를 운영하는 회사들이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무엇이 우리를 인간 답게 하는지 생각해 보고, 그것을 최대한 가까이 하는 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